
밀가루 담합에 역대급 과징금, 이제는 가격을 다시 계산하라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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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gle한 번 해봐서 아는데, 이런 시장은 쉽게 안 바뀐다
한 번 해봐서 아는데,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는 유난히 빨리 올리고 내려갈 때는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움직이는 시장이 있다. 밀가루가 딱 그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의 담합을 적발하고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정도면 단순한 위반이 아니라, 시장 가격 형성 자체를 왜곡한 사건으로 보는 게 맞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소비자만 손해를 본다. 라면, 빵, 국수, 과자 같은 생활필수 품목의 출발점이 밀가루인데, 출발점이 흔들리면 끝단 가격도 같이 흔들린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엄하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거리 물가를 건드린 담합은 일반 산업재 담합보다 체감 충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 87.7%, 그냥 과점이 아니라 구조적 힘이다
이번 사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7개 제분사가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87.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2024년 매출액 기준으로도 이 수치가 확인됐다. 이 정도면 서로 눈치만 맞추어도 시장 전체가 따라 움직이는 구조다.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에서는 가격이 자연스럽게 내려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담합은 더 악질적이다.
공정위는 이들이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24차례 담합을 벌였다고 밝혔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였다. 숫자만 보면 회의 한두 번에서 끝난 일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가격과 물량을 조율한 셈이다. 영업 현장에서 이런 식의 합의가 한 번 굳어지면, 아래쪽 거래처는 선택지가 없다. 받아들이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담합은 회의실에서 시작되고, 현장 가격표에서 끝난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이 총 55회 있었다. 대표자급에서 큰 틀을 정하고, 실무자급에서 세부 조건을 맞추는 방식이었다. 이런 형태는 기업 담합에서 자주 보이는 전형이다. 겉으로는 각자 경쟁하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인상폭과 시기를 정리해 놓는 식이다. 실제로는 경쟁이 아니라 가격 공동관리다.
특히 원맥 가격이 오르던 2020년부터 2022년에는 원가 상승분을 빨리 반영하려고 인상폭과 시기를 맞췄고,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반대로 하락분 반영을 최대한 늦췄다. 이건 시장 원리를 이용한 게 아니라 시장 원리를 비틀어먹은 것이다. 원가가 오를 때는 번개처럼, 내려갈 때는 굼벵이처럼 움직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공정위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담합 시작 시점인 2019년 12월과 비교해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이 수치는 그냥 넘어갈 수준이 아니다. 생활물가가 체감되는 속도로 오른 셈이다. 실제로 원재료가 비싸졌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담합이 있었다면 가격이 더 단단하게 묶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 비교 항목 | 내용 |
|---|---|
| 담합 기간 | 2019년 11월 ~ 2025년 10월 |
| 담합 횟수 | 총 24차례 |
| 회의 횟수 | 총 55회 |
| 관련 매출액 | 약 5조6900억원 ~ 5조8000여억원 |
| 과징금 | 6710억4500만원 |
이 사건이 더 센 이유는, 한 번 맞고도 또 했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이번 제재를 무겁게 보는 이유는 단순히 금액 때문만이 아니다. 이들 제분사는 2006년에도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다시 같은 방식의 담합을 반복했다. 현실적으로 이런 기업은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이미 한 번 제재를 받은 뒤에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면, 그건 실수라기보다 습관에 가깝다.
더 문제는 정부가 물가 안정 차원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던 시기에도 담합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471억원이 지급됐는데, 그 기간에도 시장 질서는 회복되지 않았다. 지원은 지원대로 받고, 가격은 가격대로 짜 맞췄다는 얘기다. 이런 장면을 보면 일반 소비자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려 했는데, 정작 일부 사업자는 그 틈을 이용한 셈이니까.
가격 재결정 명령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 압박이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조치는 과징금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7개 제분사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부과했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다시 정상 수준으로 재산정하라는 뜻이다. 이 명령은 2006년 사건 이후 약 20년 만에 다시 검토되는 조치다. 당시에도 가격 재결정 명령이 있었고, 이후 약 5%의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에도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제 가격 압박 수단으로 봐야 한다.
공정위는 앞으로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보고하도록 하는 명령도 부과했다. 이런 사후 감시는 의외로 중요하다. 담합은 적발보다 재발 방지가 더 어렵다. 걸려도 다시 뭉치는 게 담합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격 보고 의무는 형식적인 행정이 아니라, 시장을 계속 들여다보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는 실효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을 회복하는 조치로서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시켰다.”
라면, 빵, 과자 가격은 결국 이 원료에서 시작된다
밀가루는 그냥 분말 한 봉지가 아니다. 라면, 빵, 국수, 과자처럼 일상에서 자주 소비되는 제품의 출발점이다. 밀가루 값이 오르면 제빵·제과·제면업체가 먼저 타격을 받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기 쉽다. 공정위도 바로 이 점을 짚었다. 제분사들이 밀가루를 비싸게 팔수록 하류 산업은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고, 소비자는 더 비싼 생활비를 감당하게 된다는 구조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국민 먹거리의 핵심 원료를 두고 시장점유율이 높은 사업자들이 장기간 은밀하게 담합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나도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매달 지출을 맞춰보면 체감이 확실하다. 원료 가격 하나가 흔들리면 장바구니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이런 사건은 그냥 기업 제재 뉴스로만 보면 안 된다. 생활비와 직결된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
이번 과징금이 역대 최대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공정위가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기준선을 세웠다는 점이다. 담합으로 번 돈보다 더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해야 시장이 움직인다. 그게 아니면, 기업들은 또다시 숫자 맞추기와 가격 눈치게임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한 번 해봐서 아는데, 이런 식의 관행은 시장이 알아서 고쳐주지 않는다. 제도와 감시가 세게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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